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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 10

10. 본능으로 지역사회와 협업하라.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기를 그냥 굽는 것이 아니라 양념을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좋아했다. 시금치나물과 콩나물 무침을 만들고 미역국과 소고기국을 끊이고 파스타에 도전했다. 먹방 프로그램을 보고 유튜브의 요리방송을 구독했다. 내친 김에 집사람에게 요구했다. ‘부엌을 나에게 넘겨라 !’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3~4일 식단을 고민하면서 장을 본다.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 집사람은 운동을 시작해 점점 날씬해지고 스스로 만든 음식이라 버리기 아까워 내 허리 사이즈는 늘었다. 하지만 요리가 즐겁다. 그렇게 내 본능을 찾았다.

여러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춘천에서의 일이다. 큰 아이의 자전거를 사야하는데 동네 자전거 가게의 자전거보다 대형마트의 자전거가 더 쌌다. 하지만 동네 자전거 가게에 손님이 북적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많은 날 허공만 쳐다보는 자전가 가게의 할아버지 모습이 눈에 밟혀 비싸지만 그 자전거를 샀다. 그 자전거와 함께 충남 서천군으로 이사했다. 큰 아이는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고 어느 날 자전거 타이어의 코크가 빠져 동네자전거 가게에 수리를 하러갔다. 자신의 가게에는 자전거 사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고 돈이 되지 않는 이런 수리만 하러 온다며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수리하는 내내 투털거렸다. 서천읍과 군산의 대형마트는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를 사도 그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 군산까지 가지 않는다. 지역에서 자전거를 팔고 자전거를 고치던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버지였던 그 아저씨의 일자리는 그렇게 위태로워졌다.

녹차밭이 많은 남도의 한 마을에서 마을발전계획을 만들던 때의 일이다. 녹차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인터뷰하다가 물어보았다. 첫 번째 질문, 혹시 술은 주로 어디에서 드시나요 ? 인근의 큰 도시의 번화가가 답이다. 가까운 읍내에는 좋은 술집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 질문, 혹시 농사짓지 않는 농산물은 어디에서 구매하나요 ? 인근 도시 대형마트. 마지막 질문, 혹시 어디 살고 있나요 ? 인근 도시 아파트. 큰 돈만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농촌경제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구매할만한 물건과 서비스를 농촌에서 얻기 어려워 농촌주민들도 대부분은 도시에서 소비한다. 더 불편해지면 아예 도시로 이사한다. 이렇게 농촌의 인구감소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연간 천 만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또한 하루 평균 3억 3800만원, 연간 1,234억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성업 중인 가게 중에 하나는 한복대여점이다. 2019년 현재 200여개가 넘는 가게가 있고 대여점 사장들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수요가 충분해서 추가적인 창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한복대여점의 한복은 어디서 만드는 것일까. 대여용 한복은 시간 당 만 원 정도의 요금으로 빌려주고 20~30회 정도 대여하면 쓸 수 없다고 한다. 저렴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 광장시장에서 만든 한복을 사온다. 도시재생 일을 하면서 전주 남부시장에서 한복을 만드는 할머니들에게 비용을 보조할테니 이 대여용 한복을 만들 수 없겠느냐고 여쭈어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만들지 않는다 하신다. 광장시장에서 만든 한복은 고무줄이 들어간 모양만 한복인 국적 없는 옷이라는 것이다. 40년 한복을 만들어왔는데 몇 푼 벌자고 그런 옷은 못 만들겠다 하신다. 이렇게 관광객이 전주에서 쓴 돈은 외부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지켜왔던 자존심도 사라지고 있다. 국가의 중앙경제에 예속되고 파편화된 지역경제는 국가의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기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GM이 떠나간 군산처럼.

이렇게 농촌과 지역사회가 무너진다면 귀농은 가능한 것일까. 시골살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완주는 귀촌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작은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농촌지역을 활성화해보고자 했던 2008년 완주군의 약속프로젝트였다. 농촌활력과를 신설하여 각 실과에서 산발적으로 추진하던 농촌 사업을 통합하였으며 마을회사육성, 로컬푸드, 커뮤니티비즈니스, 도농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추진했다. 로컬푸드 사업은 어르신과 소농, 귀농인이 작은 규모의 농사로도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였고 마을회사 육성사업은 소득사업과 복지를 연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시키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비지니스사업은 다양한 분야의 창업공동체를 지원하여 사회적경제와 연결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완주군은 작은 규모의 농사도 가능한 지역, 농업 이외에도 다양한 일자리가 있는 지역,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지역, 지역경제가 순환하는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도시민이 이주를 희망하는 지역이 되었다.

완주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고산면이다. 원래 농민회의 활동이 활발했고 삼기초등학교라는 혁신학교가 있어 의식있는 학부모가 이주하는 곳이기도 했다. 2010년부터 4년간 완주군에는 청년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여 다양한 진로를 찾아나갔고 이후 청년들이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2014년에는 완주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자란 아이들이 지역에 남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에서의 ‘일’을 중심으로 진로교육을 해보자는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기존에 활동하던 교육공동체활동과 결합하면서 학교별로 운영하는 방과후학교를 통합하는 풀뿌리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산면의 학부모들은 교육청과 협력하여 고산고등학교를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 농촌형 진로를 탐색하는 공립형 대안학교로 2019년 전환하였다. 그렇게 교육을 통해 사람도 순환하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부터 농사 초보자를 위해 함께 벼농사를 함께 짓는 ‘두레 벼농사’ 모임이 만들어져 귀농선배의 지도하에 서로 도와가며 벼농사를 지을 수 있고 이 모임을 지지하는 소비자들과 모내기, 달빛 논둑걷기, 수확제 등의 행사를 통해 교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모임은 소비자들과 청년농부를 위한 공유농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귀농, 귀촌인이 늘어나자 완주군은 귀농인의 집을 만들어 정착을 탐색하는 동안 2년간의 주거를 지원하고 있고 청년을 응원하는 주민들은 유연한 조건의 주거와 지역탐색을 위한 단기숙박을 제공하는 사회주택을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면소재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학부모는 유연한 아르바이트로 청년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가끔 영업을 끝난 후 카페 공간을 내주어 클럽이 만들어진다. 청년들은 방과후학교에 참여해 아이들의 이모와 삼촌의 역할을 하고 단오제와 캠프와 같은 청소년 행사에 자원봉사를 한다. 한우 협동조합은 청소년센터의 청소년 간식비를 지원하고 공유부엌의 요일 세프가 간식을 만든다. 매년 자신의 밭에서 불편한 영화제를 하는 청년농부를 응원하기 위해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은 농산물과 먹을 것을 후원한다. 나는 가끔 고산미소 시장에서 열리는 벼룩장터에 나가 한잔상담소를 운영한다. 요리만 하는데 동네 친구들이 술을 가지고 온다. 술 한잔을 하며 무엇이든 상담을 할 수 있는 좌판이다. 정작 상담을 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동네 친구들이 낮술을 먹는 명분이 될 때가 많다. 좌판을 접으면 형편에 맞추어 알아서 돈통에 돈을 넣는다. 나는 그 돈을 모아 재료비를 빼고 우리 동네에서 청소년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에 기부한다.

노동만 일이 아니다. 좋아서 하는 일도, 가치있는 일도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 돈을 버는 노동만 한다면 이 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요리로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엔 동네에서 조그만 심야식당을 해야지. 좋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맛있는 요리와 한잔 술을 기울이며 훈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행복한 상상이다.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식당이 냈다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귀농인이 마당에서 모과청을 만들어 팔았다. 1키로그램에 오천원이었는데 이 모과청을 받은 사람들이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많다며 단체 대화방에서 걱정을 하더니 급기야 파는 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답합하여 삼천원을 올렸다. 우리 동네는 그런 동네이다. 서울 종로에서 식당을 내면 망해도 동네에선 망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믿는다. 그래서 한잔상담소를 통해 이웃을 만나고 아이들과 청년들을 응원하면서 더 믿을 수 있는 동네가 되기를 바란다.

본능을 찾았다해서 그 본능이 쉽게 자신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쉬웠다면 이미 회색빛 도시에서, 팍팍한 자본주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능을 찾고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많은 농촌이 낙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몇 푼의 지원사업으로 농촌이 이 늪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알팍한 도시민의 방문을 매개로 어디 지역에서나 할 수 있는 일로 돈 냄새가 풀풀나는 사업을 만들고 그 사업을 SNS에 이쁘게 포장한다고 해서 농촌이 살아날 리 없다. 오히려 이웃를 줄세우고 농촌을 자본주의 앞에 빨가벗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본능을 자신의 일로 만들려면 기댈 수 있는 이웃이 있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지역사회가 필요하다. 그러니 내 본능만 찾아서 될 일이 아니다. 도시와 달리 시골살이를 결행하면 어쩔 수 없는 리민이고 면민이 된다. 도시의 동민과는 차원이 다른 향민권을 얻는다. 향민권에는 책임이 따른다. 시골을 시골답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향민권에는 본능을 찾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골은 여러분의 본능과 협업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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