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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 4

4.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 되지’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대부분 하는 일이 잘 안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칠 때 그렇게 말한다. 농사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그것을 축적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성향과 토지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고 또 적절한 농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실제로 내 논 옆의 논이라도 논물을 대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고 미세한 기후의 차이는 같은 날 심은 벼의 성장을 다르게 만든다. 같은 쌀이라도 품종이 다르면 모내기 시기도 달라지고 생육방식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한 지역에서 같은 품종을 경작하는 농부들의 농법을 비교하면 똑같이 농사짓는 농부는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기존의 농부들은 아버지로부터, 동네 아저씨로부터 오랜 기간 이 지식을 전수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농사 노-하우를 만들어냈다. 새롭게 농사를 시작해서 빠르게 적응하고 일정한 소득을 올리려는 새내기 농부라면 어떻든 이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농사는 ‘종합과학’이다.

농사를 과학적 관점으로 보면 무기물질부터 유기물질을 만들어 우리에게 필요한 식량을 얻는 일이다. 생물학적으로 물, 이산화탄소, 영양분이 되는 무기원소로부터 유기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광합성이라 한다.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고 수준 높은 사고를 한다 해도 동물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지구상에 유일하게 식물만이 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려면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식물은 토양으로부터 물을 얻고 영양물질을 흡수하기 때문에 토양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기후와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거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종자를 선택하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절한 작업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 기계, 퇴비, 농자재 등 각양각색의 필요한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얼마나 어렵고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지 퇴비 만들기로 설명해보자. 유기농업을 하겠다고 하면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재료를 아무렇게나 쌓아놓는다고 퇴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퇴비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를 이해해야 한다. 발효의 과학적 용어는 유기물질을 무기물질로 분해하는 소화(Digestion)인데 이 소화의 과정 중에 인간에게 유익한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효라고 부른다. 소화는 산소를 사용하는 호기성 소화, 산소를 사용하지 않는 혐기성 소화로 나누는데 혐기성 소화로 만들어진 것이 김치, 치즈, 요쿠르트이고 호기성 소화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퇴비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미생물이 간여한다.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미생물, 즉 예를 들어 호기성 미생물이 동작하기를 원하면 그 미생물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미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퇴비를 만들려면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듯 퇴비를 만들려면 미생물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미생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면 왜 습도를 조절하는지, 왜 퇴비를 섞어주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탄소와 질소의 비율을 맞추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농사에 필요한 지식이 어디 과학과 기술뿐이겠는가. 농사를 지은 후에는 팔아야 해서 농산물의 유통구조와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농민이 파는 가격과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농산물은 무게나 부피에 비해 가격이 낮고 부패하기 쉬워 유통비용이 전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또 생산지와 소비지가 공간적으로 모여있지 않기 때문에 이 둘을 연결하는데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림 3>과 같이 대형마트에 팔리는 농산물의 생산자 판매가격은 소비자 구매가격의 반도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내기 농업인이 주변의 농민들이 주로 경작하지 않는 작물을 선택하여 경쟁을 피하려 한다면 이는 좋은 판단이 아니다. 전북 장수에서는 사과 과수원을 해야 하고 경북 성주에서는 참외 농사를 지어야 하고 충남 논산에서는 딸기를 심어야 한다. 여럿이 같은 작목을 경작해야 이러한 유통비용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농협의 가장 대표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농부가 겪는 가장 난감한 상황은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다. 폭등할 때 내가 그 작물을 경작하고 있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폭락하는 작물을 내가 경작하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농산물이 이렇게 폭등과 폭락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농산물의 가격탄력성이 낮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농산물 가격은 수요량과 공급량에 의해 결정되는데 수확기의 가격을 예측하여 파종기에 재배 여부와 재배량을 결정할 수도 없고 수요에 맞추어 적절한 전체 생산량을 정하고 그 양을 다수의 농민이 공저하게 분배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농민은 일종의 시장 리스크를 숙명적으로 안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서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가끔 던지는 질문, ‘어떤 작물이 돈이 되나요 ?’는 무모하거나 무식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세상에 돈이 되는 작물은 없다. 올해 돈이 되었다가도 내년에 폭락할 수도 있다. 시장 리스크는 완전히 없앨 수 없으니 피하거나 분산시켜야 한다.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저장시설을 갖추거나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 가공으로 돌려 저장성을 높여야 한다. 아예 여러 작물을 동시에 경작하여 한 번에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산물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돈이 되는 작물을 찾아다니고 그 작물에 올-인하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농사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 유통과 시장에 대한 정보보다 농부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전남 보성에 강대인이라는 농민이 있었다. 오래전 그의 논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나무로 만든 삼각형 대문을 만들어 놓았다. 무슨 문이냐 물으니 논 주변 산의 지세가 지기가 빠져나가는 형국이어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문을 만들어 벼들을 평안하게 했다고 대답했다. 더 나아가 새벽에 논에 나가면 벼들이 사랑스러워 손뼉을 치며 잘 잤냐고 인사를 하고 태풍이 몰려오면 꽹과리를 들고 나가 이겨낼 수 있다며 벼들을 응원한다. 미쳤다고 하겠지만 강대인 농부는 농사는 생명을 키우는 것이며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라 후배들을 가르쳤다. 강대인 농부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농사는 하늘과 땅이 짓는 것, 그 중 사람의 기술이란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술보다는 하늘과 땅과 하나 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농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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