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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 6

6. 많이 버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이 더 낫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한 시스템 에콜로지(System Ecology)는 시스템 분석(System Analysis)을 활용한다. 시스템 분석에서 흔히 쓰는 방법의 하나는 검은 상자 접근법(Black Box Approach)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상자를 덮고 안이 보이지 않게 검은색으로 칠한다. 그러면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입력과 상자 밖으로 나오는 출력만 남는다. 굳이 상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알지 못해도 입력과 출력, 그리고 그 변화로 상자 내부를 추측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상자 내부를 바꾸기 위한 대안을 찾아낼 수도 있다.

농정의 목표는 농가의 소득을 증가시키거나 안정화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농가소득은 농가가 버는 돈에서 농가가 지출하는 돈을 뺀 나머지이다. 그런데 우리 농정은 유독 버는 돈, 특히 농사로 버는 돈에 집중한다. 검은 상자 접근법으로 농가의 소득을 높이는 방법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농가소득은 농업 총수익과 농업외 소득으로 구성되어 있고 농가지출은 농업경영비와 가계지출로 구성된다. 농가의 소득을 높이려면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에 있는 입력을 늘리거나 왼쪽에 있는 지출을 줄이면 된다.

 

먼저 농업부분만 먼저 살펴보자. 농업소득은 농업총수익에서 농업경영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지난 30년간(1989년∼2018년) 관련 지표를 그래프로 비교하면 다음 <그림 8>과 같다. 지난 30년간 농업 총수익의 증가율보다 농업경영비의 증가율이 높아 농업소득의 증가율을 잡아먹고 있다. 실제로 농업총수익은 지난 30년간 4.4배 증가했으나 농업경영비는 8.8배 증가하여 농업소득은 2.3배밖에 상승하지 못했다. 1989년 46.1%였던 농업소득 대비 농업경영비는 2018년 156.6%가 되었다. 즉, 농사를 지으면서 쓰는 돈이 버는 돈에 절반이었지만 지금은 1.5배가 넘는 상황이 되었다.

농가경제로 확대해보자. 농가경제잉여는 농업소득과 농외소득을 합친 농가소득에서 가계지출을 제외한 금액이다. 1989년부터 2018년 지난 30년간 농가소득과 가계지출의 증가추세는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그 차이가 크지 않아 농가경제잉여는 2017년, 2018년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대개 500만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즉, 농가소득이 증가했지만 가계지출 동반 상승해서 농가경제는 밑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정을 흔히 프로그램 농정이라 부른다. 농정당국이 부서별로 농민을 위해 만든 다양한 지원정책을 농민이 선택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어서 마치 스마트 폰의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처럼 공급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프로그램의 주요한 목표는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지난 30년간의 통계자료는 농업 총수익이 늘더라도 농업 경영비를 낮추지 않는 한 농업소득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과 농가의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농가 경제가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생산과 농촌 생활에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편향된 정책은 벌써 수정했어야 했다.

시골살이를 시작한다면 앞에서 돈 버는 것보다 뒤로 쓰는 돈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작은 규모에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도입하면 적절한 규모까지 그 방식을 유지할 수 있으니 너무 크게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 빚을 내어 지속적인 현금의 지출을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지 않도록 작부체계를 짜고 자급할 수 있는 작물을 늘리고 농사와 생활에 전기와 화석연료의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특히 에너지는 언제 가격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좋다.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지출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활동을 통해 줄여야 한다.

 

농촌은 펑펑 돈을 쓸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귀농

#귀농귀촌

#퍼머컬처

#농촌은_귀농을_원하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