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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 2

2. 농촌은 특별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농사가 이렇게 어려운데 왜 농정당국은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라고 부추길까. 더 나아가 소수의 성공한 귀농 사례들을 내세우며 가능성이 낮은 일을 지원하는 것일까.

내가 농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생태마을을 공부하게 되면서이다. 2000년 호주 크리스탈워터즈라는 마을의 퍼머컬처디자인 코스 (Permacultue Design Course)에 참가했었다. 생태마을을 공부해보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촌 마을은 서구의 생태마을보다 훨씬 더 생태적이었다. 하지만 그 전통과 지혜를 무시하고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 방식으로 시멘트로 포장되고 자본주의로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 더 안타까웠다.

그래서 호주에서 돌아와 시스템 에콜로지(System Ecology) 공부를 포기하고 우리나라 농촌마을을 지속가능한 마을로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정부는 농촌마을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녹색농촌체험마을, 전통테마마을 등의 사업을 통해 농촌의 소득원을 체험 혹은 관광과 관련한 3차 서비스로 다각화하려는 사업이었다. 이 정책 사업은 마을(리) 단위로 2억 원 정도의 지원사업으로 관련 시설을 조성하거나 연계된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업의 지원을 받는 마을을 대상으로 생태마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마을 발전 방향을 주민들과 합의하고 생태마을의 취지에 맞는 마을의 소득을 발굴하여 이를 지원사업과 연결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행정 절차상 이러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이전까지 마을계획을 맡은 기관은 계획만 세우고 이후 마을에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계획을 수립할 뿐 아니라 주민의 역량을 높이고 더 나아가 초기에 사업을 일정 기간 인큐베이팅하는 방식인 ‘컨설팅’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농촌마을 컨설팅’이라는 말을 우리나라 최초로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에 컨설팅하러 왔다고 이야기하면 부동산 사업하러 온 것으로 농민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농촌 지역에서 ‘컨설팅’이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고 관련 회사도 많이 생겨 활동하고 있다.

3,4년 정도 이 일을 하던 어느 날, 농정당국의 담당자, 농촌 전문가들 앞에서 한 농촌마을의 발전계획을 발표하였더니 ‘이장’이라는 회사에서 한 마을의 사업계획은 다 똑같아서 차별화가 되지 않고 경쟁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전까지 농촌마을을 차별화할 생각도 없었고 경쟁력을 갖게 할 마음도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농촌마을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모든 마을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웃 마을에서 했던 사업과 활동도 그대로 따라 하기로 어려운 농촌주민들이 차별화된 그 어려운 일로 경쟁력을 가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후 유사한 사업을 지원받은 마을은 점점 많아졌고 사업 취지에 맞게 성공한 마을도 생겨났다. 농정당국은 이 마을을 성공모델로 포장하고 이 정책의 근거와 명분을 확보하면서 사업은 축소되거나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오히려 이름과 지원금액이 다른 여러 가지 사업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농정당국에 해당 사업에 실패한 마을이나 이러한 사업에 접근도 하지 못하는 고령화된 작은 마을에 대한 대책을 묻는 것은 공허한 일이었다. 소수의 성공한 귀농인을 모델로 귀농정책을 펴는 것과 닮은꼴인 셈이다. 우리 농정은 농민과 농촌주민에게 경쟁력을 가지라 사업비 혹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그 일부가 성공하면 정책이 우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면 성공 가능성이 많은 대상을 찾아 우선 지원하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농업과 관련된 지원금은 소수의 농민만 그 혜택을 받고 있는데 그 농민은 지원금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충분히 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민이라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누구나 농사를 지으면 적정한 수익이 보장되는 농업정책을 만들 수 없을까. 농촌에 살면 누구나 적정한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농촌을 발전시킬 수 없을까. 즉, 특수해법이 아닌 일반해법을 정책으로 만들고 지원할 수 없을까. 이렇게 한다면 귀농귀촌을 위한 특별한 정책 없이도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짓기 위해,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농촌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농정당국과 지방정부가 농민이든 귀농인이든 ‘누구나’를 위한 일반해법을 만들기를 바란다.

문제는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그 특수해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농촌에서 성공한 소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농민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능력을 모자라서 농촌에 남아 농사나 짓고 있다는, 그래서 내가 하면 기존의 농민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농민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귀농과 관련한 강의에 가면 귀농 희망자에게 자신의 손을 농부의 손과 비교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교육생 대부분이 비로소 자신의 손을 들여다본다. 농촌으로 들어와 흙을 만지며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손이다. 내가 만난 농부의 손은 대개 크고 두께가 있으며 그 피부는 거칠지만 질겨 보였다. 농부의 손은 다 그런 것인지, 태어나기를 다르게 태어나서인지 아니면 어려서 농부가 되면 손이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도시인의 뽀얗고 하얀 손은 ‘경쟁력’이 없는 손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손이 바로 농촌에서의 귀농인의 현재 위치이다.

가장 위험한 부류의 귀농 희망자는 중소기업 CEO 출신이다. 자신의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든, 후배에게 물려주었든 완전히 회사 경영을 손을 놓지 않아 어느 정도 수입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농업 분야에서도 성공한 CEO를 꿈꾼다. 그래서 귀농과 관련된 강의를 찾아다니고 관련 서적을 모으고 꼼꼼하게 사업계획을 만든다. 그러나 농사는 사업과 다르다. 그 사업계획은 꼼꼼하기는 하지만 지역마다 다른 기후와 조건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연금이 탄탄히 준비된 공무원과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연금 때문에 큰 소득이 필요하지 않지만 주어진 업무만 하고 살아온 세월을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귀농계획은 거침이 없다. 경작지의 규모는 너무 크고 사는 집은 농가 주택이 아니라 저택에 가깝고 더 나아가 고급스러운 조경에도 신경을 쓴다. 그 모든 것은 ‘내가 그래도 기업의 CEO였는데’, ‘그래도 농업을 좀 아는 공무원이었는데’, ‘그래도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는데’, 라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도시에서 직장에서 특별한 존재이어도 농촌에 오며 이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농부 새내기일 뿐이다.

전북의 완주군에서 추진한 로컬푸드 사업은 일반해법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특별한 농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특별한 작목이 아니라 어떤 작목이라도 팔 수 있는 직매장을 정책적으로 만들었으며 농민은 최소한의 로컬푸드에 대한 원칙을 지키며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면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특별한 농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농민 개인에게 지원한 보조금은 거의 없다. 대신 로컬푸드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사용한 공공자금은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모든 농민의 공유자산이 되어있다. 귀농하는 지역에 완주군과 같은 로컬푸드가 정착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일반해법에 가까운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농촌에서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되새기고 큰 수익이 생기지 않더라도 그 지역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농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농촌은 특별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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