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중심이 되는 ‘농촌체류형 쉼터’가 되어야 한다.
올 12월부터 농지에 ‘농촌 체류형 쉼터’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농지에는 농사에 필요한 장비와 종자를 보관하고 잠시 휴식할 수 있는 농막을 지을 수 있었다. 농막은 연면적이 20㎡(약 6평) 이하여야 하고 간이취사는 가능하지만, 숙박할 수 없고 가설건축물로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이번에 도입하는 농촌 체류형 쉼터는 도시민의 영농체험과 농촌에서의 체류를 확산하기 위해 농지전용허가 등의 절차 없이 연면적 33㎡(약 10평)까지 개인과 지자체가 지을 수 있으며 화재와 재난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갖추어야 하고 주변 농지의 영농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농식품부가 이러한 제도를 새로이 도입한 것은 농막이 불법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농막은 약 23만 개가 있고 2022년 감사원이 20개 지자체의 농막 3만 3,140개를 조사했는데 52%가 불법으로 증축하거나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거할 수 없지만, 사실상 숙소로 사용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토지개발 혹은 주택시공회사가 농지를 작게 나누어 농막을 분양하는 사업을 하면서 제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주택으로 오인해 민원이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2023년, 농막을 엄정하게 관리하는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농막이 있는 농지에 전입신고를 하거나 농막의 휴식 공간이 바닥면적의 25%가 넘지 못하게 단속하고 숙박과 여가시설의 설치를 3년마다 점검하여 위반을 확인하며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허용된 1,000㎡ 이하의 농지에는 농지 규모에 따라 농막의 크기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농막의 불법적 활용은 농지와 농촌공동체를 훼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 121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즉,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농막이 도시민의 농지구매를 부추겨 농지의 가격이 높아지면 농민이 활용하기 어려워지고 영농이 아닌 다른 용도로 쉽게 전용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또한, 정식 주민이 아닌 사람과 같은 마을에 살아야 하는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고 마을에서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외면하고 공동자산의 무분별한 사용, 쓰레기 배출 등의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농지를 쪼개 지은 농막은 마을의 경관을 크게 훼손하기도 한다.
이러한 농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동시에 체류형 쉼터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농지에 도시민의 주거를 허용해 정기적으로 농촌을 오고 가는 이른바 ‘생활인구’를 늘려 이른바 농촌소멸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농촌체류형 쉼터가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고 소기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인터넷 포털에서 농촌체류형 쉼터를 검색하면 다양한 소형주택 시공업체의 광고가 넘쳐나고 지방의 한 방송사가 주택시공업체와 MOU를 맺고 체류형 쉼터의 조성을 활성화하겠다는 기사도 보인다. 농촌의 기존 주택에 대한 거래를 감소시키고 1가구1주택 특례를 통해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주택구입을 활성화하는 ‘세컨드 홈’ 정책과 충돌된다는 문제의 제기도 만만치 않다. 농식품부도 이러한 우려에 따라 체류형 쉼터는 12년만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그 현실성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농지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어떻게 개정될지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불법적 농막을 양성화하고 농촌인구감소에 대응하고자 하는 농촌체류형 쉼터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 정책의 주요한 이해관계자로 농민과 농촌주민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체류형 쉼터가 만들어지는 마을의 주민은 농촌체류형 쉼터가 설치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지, 자신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어느 농지를 보전하여 영농을 활성화하고 어떤 땅에 농촌체류형 쉼터를 조성해 지역을 활성화할 것인지 농민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농민과 농촌주민이 먼저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만들면 좋을 것이다.
인구감소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일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지역주민인데 관련된 정책의 주된 대상은 인구수를 채우는 도시민으로 보고 있는 지방소멸 대응 정책과 농촌체류형 쉼터는 닮은꼴이다. 농지를 지키고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주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농민이다. 농촌체류형 쉼더도 농민이 중심이 되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
<iframe src="https://www.facebook.com/plugins/post.php?h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permalink.php%3Fstory_fbid%3Dpfbid0e4bNL1c6E4y22BMJNQUkYoWwegRW959DRFJ7YTbeDa4Yc6vqbmH8bLyibue3EhGxl%26id%3D597819815&show_text=true&width=500" width="500" height="250" style="border:none;overflow:hidden" scrolling="n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true" allow="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picture-in-picture; web-share"></iframe>
'임경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지방소멸을 막지 못하는 이유 (0) | 2024.07.18 |
---|---|
사라지는 꿀벌, 공생으로의 회심이 필요하다. (0) | 2024.05.23 |
다중위기의 해결사, 흙을 다시 보자 (0) | 2024.03.19 |
새해, 지방소멸 대응의 성과를 기대하며 (0) | 2024.03.19 |
상생의 작고 조용한 혁명을 기대한다 (0) | 202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