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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상생의 작고 조용한 혁명을 기대한다

<내일신문 2023년 12월 신문로>
상생의 작고 조용한 혁명을 기대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말이 나온다. ‘있고 없는 것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기고 어렵고 쉬운 것은 서로를 보완하며 길고 짧은 것은 서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주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의논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뒤는 서로를 따른다’라 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또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뜻이라 한다. 언젠가부터 ‘유무’대신 ‘도농(都農)’을 써 도농상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농촌에 있는 것이 도시에 없고 도시에 있는 것이 농촌에 없으니,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유무는 도농으로 적절히 대치했지만, 상생은 그 뜻을 더 새겨야 할 듯하다.
어느 한 대도시에서 농촌과 교류하고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상생’이라 이름을 지은 직매장을 만든 적이 있다. 그 도시의 관련 위원으로 개장식에 초청받아 참석하니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농부들이 행사장의 맨 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생의 뜻을 새긴다면 이 행사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마땅이 그들이 되어야 했다. 인사말을 해야 했던 필자는 ‘농촌이 없는 도시는 허망합니다. 농부들이 땅을 내어 공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농지를 판 돈으로 자식을 공부시켜 산업 역군을 만들고 그들이 도시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도 농촌 없이 도시는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시에 꼭 필요한 물, 에너지, 식량은 농촌에서 만들어지고 도시에서 버린 쓰레기는 농촌에서 처리합니다. 농촌은 도시의 어머니입니다. 어쩌면 상생이라는 말은 틀린 말일지 모릅니다. 도시는 농촌과 농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곳은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도농교류를 하겠다며 농촌을 찾은 도시의 공무원들은 농촌 지자체의 직원들을 하급자 취급을 하고 1사1촌 운동으로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선 대기업 임원들의 말 속에는 불우이웃돕기 냄새가 풍긴다. 학교급식을 걱정하는 학부모와 영양사에게 농부는 식자재 공급업자이고 인근 밭의 다른 농부가 사용한 농약이 소량이라도 검출되면 친환경농업인은 범죄자가 된다. 정부의 돈을 받아 농촌관광에 나선 도시민들은 농가 숙소에서 침대방은 없냐, 조명이 어둡다, 케이블 TV가 나오지 않는다, 불평을 늘어놓는다. 농촌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다.
작년, 12월 15일에 수원에 자리 잡은 국립농업박물관이 개관했다. 농업과 농촌에 깃든 가치를 확산하고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건립된 이 박물관은 농촌진흥청이 이전한 부지 50,000㎡에 전시동, 식물원, 교육동, 체험존 등을 두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벼농사의 일 년 과정을 ‘벼토리’라는 캐릭터가 소개해 주는 어린이박물관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모내기를 비롯한 각종 체험, 기획전시, 학술포럼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50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상생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 것 같아 그지없이 흐믓하다.
내년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라도 한 군수의 폭정과 과도한 수세에 반발한 민란으로 시작해 농민 100만여 명이 참여해 봉건제 혁파, 외세 배격을 외치고 삼남지역을 중심으로 민정을 펼쳤지만, 1894년 12월 충북 보은의 복실마을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하면서 10만여 명의 농민이 희생된 미완의 혁명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3·1 만세운동과 항일투쟁의 근간이 되었으며 혹자는 민주화 투쟁과 촛불집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국민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그 대부분이 소작인이었던 그때처럼 농민의 힘으로 사회변혁을 꿈꿀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소작료의 인상이 아니라 더 큰 사회변화를 염원했던 동학농민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렇게 믿는 것은 구한말의 양반과 지주, 부패한 관리, 소작농들의 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농업박물관이 동학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도시와 농촌이 상생해 누구나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작고 조용한 혁명을 이어가면 좋겠다. 130년 전 지금 즈음, 마지막 전투에서 죽어간 동학농민군의 염원이 작년 12월, 국립농업박물관을 만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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