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퍼머컬처 적용하기
5. 퍼머컬처의 세번째 큰 원리 : 적절한 규모로 만들어라.
(퍼머컬처 원리 7 : 작게 집약시켜라)
5. 적절한 규모로 만들어라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무조건 이익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에서의 규모의 경제는 생산요소 혹은 비용의 추가적인 투입이 없는 수준까지 규모를 늘리면 이익이 최대가 된다는 원리이다. 즉 무조건 규모를 늘린다고 해서 이익이 늘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농사는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 무조건 그 규모는 늘릴 수 없다. 방울토마토 500상자를 구매한 상인이 다음 해에 찾아와 그 토마토의 인기가 좋았다며 5.000상자를 팔아준다고 하면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양도 문제이지만 좋은 품질의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을까. 더 분명한 건, 수익은 10배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절한 규모를 찾고 그 안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시골은 땅값이 싸다고 넓게 사서 중간중간 비워 두기 쉽다. 적절한 규모의 토지에 다양한 공간을 채우고 온전하게 활용해야 한다. 보통 농장을 평면으로 생각하지만 엄연한 3차원 공간이다. 작은 트럭에 짐을 싣듯이 공간을 쌓아가며 이용해야 한다. 공간을 쌓을 뿐 아니라 작은 토지에서,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와 다양한 일이 만들어지면 집약하면 그 규모는 작아지고 적절해진다. 더불어 물이나 에너지를 공급하고 재난을 막아야 하는 중요한 일은 그 다양성 속에서 쉽게 해결된다.
■ 퍼머컬처의 원리 7 : 작게 집약시켜라.
농산물 시장이 해외에 개방되면서 우리 농가가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가 규모가 작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부는 규모화, 전문화, 특화를 외치며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으로 호당경지면적은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의 경지면적에 비교하면 적은 편에 속해 실제 그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더군다나 확대한 경지가 작지만 집한곳에 모여 있어야 규모의 확대 효과가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농촌의 지형과 지역사회의 특성상 이렇게 만들기 어렵다. 퍼머컬처에서는 오히려 규모를 늘리기보다 적절한 규모 내에서 집약하고 효율을 높이라 주문한다.
퍼머컬처는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이 아니라 손을 사용하는 농기구, 필요하다면 연료를 적게 사용하는 농기계로도 유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그 생산물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눈다. 그렇다고 힘들고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하면서 상업적인 작목을 경작하는 노동집약적인 소작농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부의 노동, 다양한 작물, 주변의 생물자원, 적정기술, 효율적인 기계 등을 통합하여 최적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고 집약적인 시스템이란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철두철미하게 활용하고 온전한 관리하에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공간이 작은 경우 쉽게 달성될 수 있을지 모르나 큰 경우 단번에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면 노동력과 에너지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그래서 단계별로 접근해야 한다. 온전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0지구인 집의 문 앞에 서서 관리하는 토지의 경계까지 쳐다볼 때 의도하지 않는 식물, 즉 잡초가 보인다면 온전히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온전하게 토지를 관리할 수 없다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연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토양침식을 막고 자연의 다양성을 늘려 병해충을 줄인다. 우리는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비어있는 공간에 무언가를 개발해서 채워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토지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자연의 힘에 대한 신뢰는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이다. 나부터 그것을 실천해야 미래 세대에게 걱정이 없는 삶터를 물려줄 수 있다.
작지만 집약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첫 단계는 집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넓은 토지에 계획을 세웠더라도 집 앞의 작은 공간부터 집약해 나가야 한다. 즉, 1지구를 완성하고 2지구, 3지구로 나가야 한다. 돈 버는 일이 먼저라고 멀리 있는 경작지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 멀리 있는 공간에 무언가를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 1지구를 제대로 만들면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식량과 목재를 생산할 수 있고 다른 지구를 만들 때 필요한 퇴비와 자재 등을 생산할 수 있어 비용이 절약되고 1지구를 관리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를 없앤다.
작지만 집약적인 공간은 입체적이다. 시골은 땅이 넓어 굳이 아래위를 생각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평면에 늘어놓기 쉽다. 하지만 모든 공간은 높이가 있는 3차원이다. 집을 짓더라도 반지하 창고를 만들면 농산물 저온창고를 사지 않아도 되고 큰 과일나무 아래에는 동물을 키우거나 작은 나무와 초본의 농작물이 자랄 수 있다. 퍼머컬처에서는 이렇게 아래, 위 공간을 겹쳐 이용하는 방식을 스태킹(Stacking)이라 한다. 과수나무 아래에 잡초가 아닌 헤어리베치와 같이 토양에 질소를 남기고 넝쿨이라 잡초를 막으며 스스로 멀칭 재료가 되는 식물을 키울 수 있다. 벼 아래 공간에 오리가 활동하고, 논물에는 우렁이와 물고기가 살고, 닭장 밑에 퇴비장을 만들 수 있다. 모두 스태킹이다. 집약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3차원으로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퍼머컬처에서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스태킹하라고 주문한다. 이를 타임 스태킹이라 하는데 작부체계에 적용하면 윤작이다. 자연농업을 주장한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벼농사에도 윤작을 적용한다. 여름에는 벼, 겨울에는 밀과 보리로 몇 해 경작하다가 메밀과 콩을 한해 심어 지력을 보강한다. 한 공간을 시간에 따라 나누어 쓰면서 지속적인 생산량이 담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농업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정호진 목사는 가을 고추밭에 배추씨를 흩뿌려 놓는다. 시들어가는 고춧대 사이로 배추들이 자란다. 이 배추로 김장을 하고 겨울 동안 얼지 않게 묶어놓은 배추로 배춧국을 끊이고 겉절이를 먹는다. 그래도 배추는 남는다. 이 배추는 다음 봄에 고추밭을 덮은 멀칭 재료가 된다. 하나의 밭을 고추와 배추로 계절에 따라 스태킹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식량을 얻었고 토양을 비옥하게 할 재료도 얻은 셈이다.
스태킹을 농사 이외에 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 계획하면 텃밭은 이쁜 정원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작은 과수원은 치유센터가 되고 닭장은 체험장이 될 수 있다. 농번기에 기계와 장비를 보관하고 비가림 작업을 할 수 있는 창고나 비닐하우스는 농한기에 교육장과 체험장이 될 수 있다. 타임 스태킹도 가능하다. 평상시에는 농부이지만 특별한 요일에는 방과후 강사가 될 수 있다. 낮에는 농산물을 가공하고 저녁에는 심야식당의 쉐프가 될 수도 있다. 공간과 시간을 나누어 쓰면 다양한 요소와 다양한 일을 집약시킬 수 있고 집약된 토지이용과 시골살이는 서로 간의 연계성을 높이고 의외의 시너지를 만들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생산성을 높인다. 더불어 반복적인 고된 노동을 변화무쌍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
시골살이에서의 적용 Tips
① 노동시간을 가늠해보자. 흔히 농부 자신의 노동을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자영업과 유사하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의 비용을 모두 제하고 남은 돈이 곧 농민의 소득이다. 이 방식이 착각을 일으킨다. 농장을 크게 만들면 자신의 노동으로 벅차니 배우자를 동원하고 도시에 나간 자식을 주말에 불러들인다. 놉을 쓰자니 아까우니까. 농장을 계획할 때 자신의 농업노동에 대한 화폐적 가치도 고려해보자. 노동시간을 가늠하여 적어도 도시근로자 평균임금 혹은 농촌 일당을 곱해 돈으로 환산한 후 비용과 수입을 예측해보자. 아마도 대부분 간신히 수익이 좀 내거나 적자일 거다. 적자 폭이 터무니없으면 일단 농장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번잡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다시 계획해야 한다. 농장이 적절한 규모가 되면 농업노동이 적절해지면 혹시라도 오랜 기간 농장을 비우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유지할 수 있다.
② 물려줄 것을 대비하자. 언젠가 모든 토지는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자식이 받을 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온갖 나무와 꽃을 심고 잔디를 가꾸어도 막상 팔려고 하면 노력과 애정을 쏟은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더 안타까운 것은 농장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고 무언가를 심었다가 뽑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해야 한다. 되도록 농장을 빨리 완성하고 이후에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게 만들고 집약시켜야 한다. 혹시라도 땅이 남는다면 비워 두자. 그 땅은 물려받는 사람이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이 될 것이다. 그 다른 사람이 내 아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③ 도시로 나가는 일을 줄여라.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농촌의 어느 지역에서도 20~30분 안에 도시의 번화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시골살이를 하더라도 도시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은 번잡해지고 시간은 뚝뚝 끊어지고 길 위에 돈을 버리게 된다.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쓰면 좋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가까운 곳에서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적절한 규모에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마을과 동네에서 사회적 관계도 다양하게 집약시켜야 한다. |
'임경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12) (0) | 2020.04.08 |
---|---|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11) (0) | 2020.04.08 |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9) (0) | 2020.03.17 |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8) (0) | 2020.03.17 |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7)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