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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칼럼

퍼머컬처로 여는 시골살이Ⅱ(9)

2부 : 퍼머컬처 적용하기

 

 

4. 퍼머컬처의 두번째 큰 원리 : 상업적 에너지를 줄여라

(퍼머컬처 원리 6 : 상대적 위치를 고려하라)

■ 퍼머컬처의 원리 6 : 상대적 위치를 고려하라

디자인의 핵심은 관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다.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옷과 몸의 관계, 옷의 각 부분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퍼머컬처를 디자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퍼머컬처가 디자인하는 것은 닭장 그 자체가 아니다. 퍼머컬처는 나무로부터 닭이 모이를 얻고 연못으로부터 물을 얻을 수 있도록 닭장과 나무, 연못과의 관계를 디자인한다.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이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댐과 물탱크는 집과 정원, 텃밭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전기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중력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방풍림은 집과 과수원 등에 바람이 들이치는 곳에 만들어야 하지만 겨울에는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텃밭은 집과 닭장 사이에 있어야 집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 텃밭 부산물, 닭똥 등을 서로 연결하기 수월할 것이다.

농장에 필요한 요소들이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으려면 이 요소에 필요한 것과 이 요소로부터 생산되는 것, 요소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요소분석이라 한다. 예를 들어 닭을 대상으로 요소분석을 하면 아래와 같다.

 

구분

방법

고려해야 할 특성

산란 및 보육 능력, 나는 능력, 기후 적응력 등

입력

만들 때 필요한 것

닭장, 울타리, 모래, 땅, 횟대, 알 낳는 장소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

물, 신선한 공기, 모이

출력

이용할 수 있는 것

땅 파헤치기, 벌레잡기, 닭과의 싸움

생산 혹은 배출되는 것

계란, 고기, 깃털, 닭똥, 죽은 닭, 메탄, 이산화탄소

 

요소분석을 해보니 닭장은 텃밭, 온실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닭똥을 퇴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퇴비장에 대해 분석하면 퇴비장은 닭장과도 가깝고 텃밭이나 온실과도 적정한 거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닭장 옆에 퇴비장을 만들면 될까. 발상을 전환해보자. 옆에 붙이지 말고 위, 아래로 붙이면 어떻게 될까. 닭장을 퇴비장 위에 만들면 닭똥이 저절로 퇴비장에 떨어진다. 이렇게 하면 애써 닭장의 닭똥을 긁어내어 퇴비장까지 이동시키는 일을 덜 수 있다. 닭은 높은 곳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요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마구잡이 짝짓기(Random Assembly)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마구잡이 짝짓기는 종이의 가운데를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위/아래, 옆, 안/바깥과 같은 전치사를 쓰고 그 주위에 농장의 요소들을 둥글게 쓴다. 그리고 눈을 감고 종이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는다. 꼭 직선을 그을 필요가 없고 특정한 모양이 없는 선을 마구 긋는다. 눈을 감고 그렸던 선을 쫒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조합이 만들어진다. 이 조합 중에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말이 되지 않거나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 생길 수 있다. 즉 온실 안에 창고, 닭장 위에 창고 등과 같은 조합이 생긴다. 이런 조합이라도 혹시 어떤 장점이 생길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이다. 이외의 조합에서 훌륭한 상대적 위치가 찾아질 수 있다. 무언가의 위치를 결정할 때 관계가 있는 다른 것과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이 좋은지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시간을 아끼고 상업적 에너지를 덜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시골살이에서의 적용 Tips

 

① 터를 잡기 전에 주변을 살펴야 한다.

넓게는 자리 잡을 터와 주변과의 상대적 위치를 생각해야 한다. 상류의 산이 높고 나무가 없다면 터전으로 적당하지 않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날 우려가 있다. 주변에 냄새가 나는 공장형 축사나 퇴비공장이 있다면 주풍향 방향을 기준으로 집터가 앞쪽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냄새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터를 잡기 전에 주변과의 상대적 위치를 살펴야 한다.

 

② 자주 오고 가는 것은 모아라.

요소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들고 싶은 것의 목록을 만들고 하루에 몇 번 오고 갈지 그 숫자를 옆에 쓴다. 그 숫자가 4번 이상이 되면 집과 가까운 곳에 2번 이상이 되면 집 근처에 배치하면 된다. 단, 집 앞에 두는 것이 좋을지, 뒤편에 있는 것이 좋을지 햇볕을 살피며 구별하면 된다.

 

③ 사회적 관계도 생각하자.

공간계획은 물리적 관계만 생각하면 되지만 시골살이는 사회적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 집을 꾸미거나 농장을 만들 때 내가 심은 나무가 이웃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지, 내가 만드는 소음에 영향이 없을지 살펴야 한다. 퇴비를 대주는 곳, 장비나 기구를 사는 곳, 내 농산물과 생산물을 파는 곳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도시처럼 더 싸게 주겠다는 곳이 있다고 해서, 더 비싸게 사준다고 해서 덜렁 그 관계를 끊지 않아야 한다. 그랬다간 돌고 돌아 가까운 미래에 나한테 반대의 상황이 올 수 있다. 시골살이에서는 사람이 돈으로만 연결되지 않는다. 누구든 돈과 상관없이 안부를 묻고 서로의 상황과 처지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향민권의 특권이기도 하다.

#귀농#귀녿귀촌